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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외울 글

세 선비의 소원

by 도호아빠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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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선비의 소원

오이를 푹 쪄서 초간장에 담그고 생강과 후추를 섞어 놓으면 연하고 맛있어서, 치아가 없는 노인에게도 드릴 만하다. 그것을 사람들은 ‘오이무름’이라고 불렀다.

정조 때, 김중진(金仲眞)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가 늙기도 전에 이가 모두 빠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놀리며 ‘오이무름’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가 빠져 먹기 편한 오이무름을 좋아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김중진은, 익살스러운 농담과 속된 말을 잘하였는데, 인정세태를 곡진하고 섬세하게 담아 내어 종종 들을 만하였다. 그의 ‘세 선비 소원담’이 [가장 유명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선비 세 사람이 [저승 관원들의 실수로 제 명에 죽지 못하게 되는 억울한 일이 발생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선비들은 각자 옥황상제에게 자신의 소원을 진술하였다. 

첫 번째 선비가 말하였다.
"저는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 아름다운 얼굴에다 다섯 수레의 책을 독파하고, 삼장의 시험인 초시, 복시, 전시에서 모두 장원으로 뽑혀, 청한(淸閑)의 요직(要職)에서 일하며 재주가 알맞지 않은 것이 없고 절충(折衝)과 보필(輔弼)에 능히 그 직책을 다하여, 나라의 큰 공신이 되어 저의 화상이 그려져 운대(雲臺)나 능연각(凌烟閣)에 보관되고, 저의 이름이 역사책에 실려 영원히 전하도록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상제가 측근의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어지하면 좋겠는가?"라고 하니, 문장을 맡은 문창성(文昌星)이 아뢰기를, "저 사람은 늘 음덕이 있어 다름 사람들에게 베풀었으므로 이런 보답을 받아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상제가 말하기를, "소원대로 들어 주어라"라고 하였다.

두 번째 선비가 말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빈궁한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떨어진 옷이 살갗을 가리지도 못하고 술지게미와 쌀겨도 달게 먹어야 하는 처지에, 아내의 울음과 아이의 울부짖음은 오히려 한가한 소리에 속할 것입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박하다면 선비로서 항상 지녀야 하는 마음을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저는 부자가 되어 반드시 제 손으로 수만금의 돈을 저축하고, 종자 수천 말을 땅에 뿌려서 어버이를 섬기고 처자식을 돌보고 형제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 그 예를 다 갖추도록 할 것입니다. 가난한 친척과 궁핍한 친구를 돌봐주는 일이나 나그네와 걸인이 숙식하거나 동냥하는 것을 상대할 때 곤란함 없이 각자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상제가 말하였다.
"슬프도다! 그 가난함이여! 지극한 소원이 이것 뿐인가?"라고 하고, 행정 책임자인 사록(司祿)에게 명령하여 대신 판결하게 하였다. 사록이 명령을 받들고 나아가 섬돌 위에 서서 말하였다. 
"들을지어다. 너는 살아 생전에 부유함을 믿고서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고, 남의 급한 처지를 생각해 주지 않았으며, 술을 즐기고 여색에 빠져서 꽃값으로 돈과 비단의 재물을 허비하였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며 오로지 입과 배를 만족하기만을 일삼으면서 맑은 것만 취하였고 거친 것은 싫어하여 처자를 힐책하였다. 하늘이 주신 만물을 함부로 낭비하여 아까운 줄 모르는 채 남용하여 절제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네가 스스로 취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느냐? 다만 네 선대의 조상들이 겸손하고 검소하였으며 의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으므로, 그래서 너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한다. 네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너 때문이 아니라 네 조상들 덕택이다"

두 사람은 종종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선비는 홀로 팔짱을 끼고 뜰 구석에 선 채, 눈은 껌벅껌벅 멀리 바라보고 입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러자 상제가 말했다.

"너는 무슨 소원이 있느냐?" 선비는 곧 얼굴빛을 가다듬고 무릎을 굽혀, 상제 앞으로 나아가 절한 뒤에 두 세번 헛기침을 하고 나서 아뢰었다.

"제 소원은, 앞의 두 사람과 다릅니다. 저는 맑고 한가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부귀나 공명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산을 등지고 물을 굽어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좋은 땅을 구해서, 띠집 몇 칸을 짓고 몇 이랑의 논을 갈아먹으면서 몇 그루의 뽕나무를 심고자 합니다. 하늘에는 홍수나 가뭄이 없고 땅에는 세금이나 부역이 없어서, 아침밥 저녁죽을 배불리 먹기에 충분하고 겨울의 솜옷과 여름의 갈옷은 그저 온전하고 깨끗하기만 하면 됩니다. 겸하여 자식들이 일을 나누어 맡아서 훈계하고 타이르는 일로 수고롭지 않으며, 노비들도 부지런히 노력하여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밭을 갈고 베 짜는 일을 맡아서, 안으로는 복잡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밖으로는 찾아오는 사람들로 번거롭지 않으면, 저는 한가롭게 거닐고 편안히 지내면서 온갖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고 마음에는 뭔가를 애써 하고자 하는 것이 없으며, 몸 또한 평안하고 건강하다가 나이 백 세에 이르러 병없이 죽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상제는 문득 의자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아아! 그것이 이른바 ‘청복(淸福)’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릇 청복이란, 사람마다 모두 원하는 것이지만, 하늘에서는 매우 아끼는 것이다. 만일 사람마다 구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다면, 어찌 너만 구하겠느냐? 마땅히 내가 먼저 차지하여 누릴 것이니, 무엇하러 수고스럽게 옥황상제 노릇을 하겠느냐?"

여기에 이어서 말한다.
"담론이란 은미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사람의 어지러운 마음을 풀어 준다. 이른바 ‘오이무름’이란 사람은, 비록 그 시대의 어지러운 것을 풀어 주었다고 일컬을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가 말한 비유를 취한다면 큰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겠다"

 

 

청복.mp3
5.2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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